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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룡의 뉴스

염따의 역사 - 쇼미10 프로듀서까지의 성공 스토리

by za.ryong_ 2021. 10. 13.

염따 요즘 핫한(?) 래퍼 중 하나죠? 실력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특이한 행동 때문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 얼마 전 힙합계의 대부 더콰이엇과 데이토나라는 레이블을 창설하면서 정말 크게 성공한듯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염따가 대중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년도서부터였습니다. 오늘은 염따가 쇼미 10 프로듀서가 되기까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염따의 인생 초반부 (쿤타, 무한도전, VJ)

 

염따, 힙합을 처음 시작했을때부터 싱잉 랩 위주로 불렀던 래퍼입니다. 그때 당시엔 아웃사이더 같은 속사포 래퍼나 펀치라인이 오지고 지리는 래퍼들이 각광받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바로 묻힙니다. 06년 염따의 첫 싱글 where is my radio,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죠. 오히려 얼마 전 쇼미 10에 출연한 쿤타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죠. 염따는 그렇게 오랜 무명의 생활을 보냅니다. 그런 그에게 천금 같은 기회가 주어집니다. 

 

염따, 무한도전 또라이 콘테스트 최종 24인에 들다

 

동영상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습니다. 09년 무한도전에서 진행한 또라이 콘테스트 나가 최종 24인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그때는 염따가 아닌 염현수라는 본명으로 출현을 하게 되었죠. 이때서부터 염따 예능감 조금씩 길러가기 시작합니다. 예능 래퍼의 조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Mnet에서 VJ 활동을 시작하는 염따

 

제 기억에 남아있는 염따는 VJ였거든요. 래퍼인 줄 몰랐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무한도전에서의 예능감이 Mnet의 VJ 발탁까지 이어지게 돼 것이었죠. 그 와중에 염따는 꾸준히 내 갈길 가듯 정규 1집 살아 숨 셔 발매합니다. 당연히 묻히죠. 왜냐면 싱잉 랩 스타일이니까요. 근데 요즘 싱잉 랩 대세 되었죠? 지금 들어보면 좋습니다.

 

 

 

염따의 전성기 (딩고, 티셔츠, Don't Call me)

 

19년도 염따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유튜브의 태동기였죠? 염따, Mnet VJ 활동 경력을 토대로, 유튭의 Mnet이라 불리는 딩고에 입성합니다. 딩고에서 그의 예능감으로 인지도를 차근차근 쌓아나가죠. 개인 유튜브도 병행해가면서 말이죠. 여기서 또 한번 염따에게 큰 기회가 찾아옵니다.

 

힙합계의 BTS (Best T-shirt Seller)

 

그동안 인스타와 유튜브로 어그로 끌어왔던 염따, SNS 통해 자신의 앨범 오너캐가 박힌 티셔츠 판매합니다. 순식간에 2000장 팔아 6000만원을 벌게 되죠. 이때까지만 해도 염따, 가내 수공업 형태였습니다. 본인이 직접, 포장 택배 붙였죠. 그러다 절친인 더콰이엇의 벤틀리, 박아버립니다. 수리비 벌라고 콰형의 벤틀리 박은 사진 박은 티셔츠 판매, 말 그대로 대박 20억 원 판매합니다. 미쳤죠? 이걸로 인생이 역전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콰형은 염따에게는 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염따의 히트곡 Don't Call me

 

싱잉랩 한우물만 파던 염따의 외길인생 이 곡으로 대박이 납니다. don't call me 인트로에서 나오는 "랩과 힙합을 좋아하는 30 아저씨"라는 이미지를 제대로 살리면서 노래 또한 상당히 좋아 호평을 받습니다. 이때서부터 염따의 음악이 주목받게 된 계기가 아닌가 합니다.

 

 

 

현재의 염따 (다모임, 데이토나, 쇼미 10 프로듀서)

 

운이 트일라면 이렇게 트인달까요? 비주류였던 싱잉 랩이 주류로 바뀌고, 무명서부터 쌓아왔던 VJ 경력이 예능감으로 이어져 현 힙합씬의 대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더콰이엇, 팔로알토, 딥플로우, 쌈디와 함께 다모임을 결성합니다.

 

다모임의 수장 염따(?)

 

다모임 출신들, 쇼미로 어느정도 방송생활도 많이 해봤지만, 그래도 아티스트 특유의 묵직함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염따라는 혼종이 함유되면서 다모임을 완성시킵니다. 그의 뛰어난 입담이 개성 넘치는 각 레이블들의 수장을 한데 묶었다고 볼 수 있죠. 다모임서 아마두, 중2병 등 힙한 노래들 탄생시킵니다.

 

더콰이엇과 함께 설립한 레이블 데이토나

 

이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더 콰이엇 정말 좋아하는데요. 일리네어가 거의 해체 수준까지 가면서 콰형이 손을 잡은 사람은 바로 염따, 그였습니다. 사실 콰형이 염따에게 오염 되질 않길 바랍니다만, 그의 취향이니 존중할 필요는 있겠죠. 그동안 더콰이엇은 힙합씬에서 새로운 시도를 통해 항상 나아가는 혁명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염따를 선택한 것도 그러한 포석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쇼미 10 프로듀서가 된 염따

 

쇼미 프로듀서라 하면, 힙합씬에서 확실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만 앉을 수 있는 자리죠. 그 자리에 염따가 앉게 됩니다. 그만큼 그가 지금 힙합씬에서 대세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죠. 사실 염따의 래핑만 본다면 기술적으로 뛰어난 래퍼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는 현시대의 주류인 싱잉 랩을 신인시절부터 쭉 파온 장인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현 트렌드에 맞는 인재들을 잘 골라낼만한 눈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만성형 염따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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